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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항쟁의 변화 - 김원봉과 의열단원의 중국 황푸군관학교 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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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선의열단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28회 작성일 18-09-28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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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가을, 김원봉은 의열단을 이끌고 광저우로 이동한다. 손문이 주도하는 국민혁명의 거점이자 동북아정치의 중심지였던 광저우는 한국 독립운동가들에게도 새로운 활동무대가 됐다. 조직의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 광저우에서 김원봉과 20여명의 의열단원들이 선택한 것은 황푸군관학교 입학이었다. 김원봉은 개인적인 암살파괴 투쟁에 그쳤던 의열단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직적인 투쟁방법을 배우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황푸군관학교에서 얻은 것은 단순한 군사지식만이 아니었다. 중국의 혁명사상을 학습했고 공산주의 혁명이론 등 진보적인 사상도 접했다. 이 과정에서 의열단원들은 강인한 독립운동 지도자로 단련됐다. 다양한 인맥을 형성해 향후 독립운동의 지원군을 얻게 된 것도 큰 수확이었다. 김원봉은 당시 교장이었던 군부의 장제스, 정치부 교관이었던 공산당의 저우언라이 등 중국 정계의 주요 인물들과 친분을 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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